040. 서천의 순교성지를 찾아서 (상)산막골 - 충남 서천군 판교면 금덕길 81번길 119 순교는 죽음에 직면하여 신앙의 의미와 진리를 효과적으로 증거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장 소중한 생명을 바침으로써 육신을 죽이는 자를 초월하는 주님의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이므로 순교의 목표는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으며 그 가치는 최고의 존재자를 긍정하는 일이다. 또한 인간이 다른 인격을 긍정하는 것은 사랑이므로 순교는 사랑의 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2020년 4월 28일 화요일. <산막골>을 찾기로 한다. 서천에도 성지(聖地)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터라 성지로부터의 느낌이 좀 색다르게 다가온다. 예사롭지 않은 경지를 넘어 거룩하며, 매우 깨끗하고 위대하고 성스러운 땅에 이르게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산막골로 향한다. 참된 순교자란 신의 뜻대로 되어버린 사람이므로 그는 신의 의지 속에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맙니다. 아니, 버린 것이 아니라 신의 의지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찾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신에 복종함으로써 자유를 찾기 때문입니다. 엘리엇(T. S. Eliot)의 <대성당의 살인>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봄을 가로질러 달린다. 천
039. 흙을 사랑한 농민문학가, 소설가 박경수(朴敬洙) · 하 - 충남 서천군 한산면 죽동리 죽촌마을 혹 가난이라는 운명적이요 강압적인 얽어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로부터 흙을 밀어 올려 자라는 죽순과 같은 의지를 터득한 것이나 아닐까. 무엇에도 개의치 않고 홀로 푸르러 구름송이 스쳐가는 창공을 향하여 쭉쭉 자라나는 푸른 대나무의 꼿꼿한 기상을 박경수는 스스로 정립(定立)하였는지도 모른다. 아니 휘거나 굽은 데가 없이 똑바르게 길러온 그의 기질, 굽히거나 바꾸지 않는 강직한 자세나 굳세고 곧은 그의 신념은 푸르게 자라난 대밭의 대나무로부터 몸소 경험을 통해 절로 알아지거나 고난의 몸짓으로부터 체득한 됨됨이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2020년 2월 23일 일요일 오후. 박경수의 고택으로부터 물러 나오면서 박경수의 농촌에 대한 향수(鄕愁)와 가난한 농민에 대한 짙은 애정을 그려본다. 그의 고향에 대한 애정은 아무리 도시인으로 탈바꿈하였다 하더라도 고향을 찾게 만든다. 몇몇뿐인 부농(富農)은 더욱 살이 찌고, 대다수의 빈농(貧農)은 더욱 야위어버린 고향이지만 한결같이 패배감과 체념으로 찌들어버린 고향 사람들의 모습에서 가난의 굴레에 갇힌 채 한때 자포자기로 타락
038. 흙을 사랑한 농민문학가, 소설가 박경수(朴敬洙) · 상 - 충남 서천군 한산면 죽동리 죽촌마을 소설가 박경수의 일생을 일별하여 보면 입지적이요, 그러한 전형적인 인물로서의 귀감을 보여준다. 1930년 그는 죽촌 마을에서 지독하게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가 태어날 무렵 우리나라 어느 농어촌의 삶이 넉넉했으랴마는 그는 이 가난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면서 입지적 인물의 전형을 보여준다. 해방되던 해 불과 16세의 어린 소년으로 자동차 정비공으로 사회에 뛰어들어 운전기사의 기술까지 습득한다. 농사짓기, 운전기사를 겸하면서 고학의 긴 시간을 지나 20세에 이르러 마침내 초등학교 교사 자격시험에 당당히 합격한다. 그 합격으로 당시에 사범학교를 마친 실력과 같이 교단에 서게 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로부터 4년 후 대학 졸업자와 다름없이 중학교 교단에 설 수 있는 수 있는 중학교 교사 자격시험에 합격한다. 다른 사람들이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들어가 한낮에 공부하고 있을 때 논밭에서 일을 하였고, 그들이 편안한 잠자리를 누릴 때 그는 흔들리는 등잔불 아래에서 강의록을 펼치며 스스로의 길을 과감하게 개척해 나간다. 2020년 2월 23
037. 장항 후망산後望山에 오르다 -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암리 아, 아무리 둘러보아도 새롭다. 가슴이 탁 트인다. 후망산은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사위(四圍)를 바라보게 한다. 때로는 자신을 스스로 바라보게 하고, 자신에 대한 존재감을 새롭게 느끼도록 해주기도 한다. 후망산(後望山)은 한 걸음 건너로 전망산(前望山)과 마주하고 있다. 마주하면서 삶의 아름다운 정도(正道)를 한층 높여주고, 그만큼 신선한 삶의 길을 깨닫게 해준다. 비록 말 없는 한 덩이 거대한 바위일망정 후망산은 전망산과 더불어 하나의 엄연한 존재로써 사람들의 존재와 삶의 가치를 바른길로 안내해 주었음이 틀림없다. 비록 사면의 경사가 급하고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면서도 이곳에 오는 사람들로 하여금 삶의 굴곡을 미리 보여주었는지도 모른다. 2020년 4월 24일 금요일. 테크 계단을 타고 내려오니 장암진성(長巖鎭城)이 끝나는 곳에 이른다.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가 나타난다. 성이 끊어지면서 깊은 골짜기 사이로 꼬리를 감춘다. 나무가 우거져 있다. 이곳에서 알바위(卵巖)쪽으로 평지성을 이룬다고 한다. 완연한 골짜기이다. 그러나 골짜기로 타고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다시 바위를 타고 오른다. 골짜
036. 장항 장암진성長項 長巖鎭城에 오르다 -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암리 기벌포-진포-서천포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오는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역사의 흐름을 지켜본 전망산과 후망산과 더불어 치욕의 역사를 가멸차게 견디어온 장항제련소의 굴뚝은 우리 가슴의 상징이며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거듭으로 생각하게 해준다. 오늘날까지 전후망산이 지켜보았던 역사의 흐름에 정점을 찍고, 장항제련소의 굴뚝이 새로운 관광적 명소로 거듭나도록 하게 함으로써 살아있는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무릇 관광이라 함은 발걸음의 자유를 확보하여 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경계선을 뛰어넘어 오고 가게 하고, 그동안에 가졌던 가슴 앓이적 편견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도록 하여 새로운 시대에 맞는 커다란 길을 연출해 낼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장항읍 장암리 일대 면적 74.198㎡에 위치한 장암진성은 1995년 3월 6일 충청남도 시도기념물 제9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을 처음 찾은 날은 2019년 7월 5일 오후 여름의 햇살이 어느 날보다 뜨겁게 내리 쬐이던 날이다. 장항 제련소의 굴뚝을 배경으로 한 장항신어선물량장長項新漁船物揚場에 나아가 바닷바람을 시원하
035. 서천 중고제의 맥脈을 짚으며- 중고제의 명창 김창룡- 충남 서천군 장항읍 성주새길 145 김창룡과 함께 종천 도만리 출신의 이동백도 한때 김정근으로부터 판소리를 전수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나란히 근대 5명창의 반열에 들어 조선성악연구회에 참여 후배를 양성하였으며, 자가 가내의 법제인 중고제를 계승하여 온다. 그 중심지에는 언제나 서천이 위치한다. 중고제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예나 지금이나 서천은 경지지역과 전북지역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온다. 따라서 서천에서 판소리의 명창이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만 여길 수 없다. 그에 따른 왕성한 전파력에 편승하여 중고제가 충청권과 경기권을 영역으로 발달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고제는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 전승되는 판소리 소리제로 귀결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서천의 중고제 판소리는 고제 판소리를 한 단계 위로 성장시킨 판소리라 할 수 있다. 2020년 2월 20일 목요일 오후. 중고제 판소리의 명창 김창룡이 출생하였다는 장항 황산을 향하여 달린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들을 모아본다. 우리 전통 음악 중에서 왜 판소리만이 ‘소리’라고 불렀을까? 우리의 전통
034. 서천군 내의 석탑石塔을 찾아서 - 서천군내 소재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석탑 탑은 본래 서 있던 자리 그대로를 지키며 폭풍을 이겨내고 눈보라를 굳건하게 서 있으나 잔혹한 일제는 그대로 두지 않은 흔적을 지금까지도 남겨두고 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일본에서 거래되는 골동품의 30퍼센트는 한국 유물이요, 일본 소재 한국 문화재는 6만6천여 점이나 된단다. 이는 곧 우리 민족문화재가 외침 세력에게 약탈과 파괴를 당했다는 것이요, 또한 민족의 영광과 긍지와 정신이 약탈되고 파괴되고 유린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국력이 피폐하다가 결국 일제에게 나라를 잃게 되었던 통분스런 시기에 일제 범행자들에게 우리의 온갖 역사 문화재들이 당한 치욕의 사실들을 낱낱이 조사하고 확인하고 정리하여 부끄러운 역사에 교훈을 담는 일을 절대적으로 감행해야 할 일이다. 2020년 4월 24일 금요일. 마서면 봉남리의 3층석탑을 찾아가다가 문득 서천군에는 석탑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난다. 그러다가 서천군에는 5기(基)의 탑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중에 비인면의 성북리 오층석탑은 보물 224호로 석탑 중 유일한 보물이요 군내 유일한 5층석탑이다. 나머지 4기는 모두 하나같이
033. 한낮의 월하성 달빛 - 충남 서천군 서면 월호리 월하성 마을 서서히 시장기를 느끼게 한다. 쌍도를 바라보며 이무기로부터 쫓겨나오다가 어깨 밑의 날개를 들켜 죽임을 당한 어린 장수의 슬픈 이야기를 떠올리며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이 월하성에서는 월하성이 가지는 이름과 그에 어울리는 마음의 움직임 때문에 각박한 오늘날에 있어서도 결코 이지적이고 이성적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웰빙을 위한 정서함양을 위하여 월하성 포구로부터 헤드랜드를 따라 띠섬과 연결하면서 옥녀봉을 최고의 전망을 겸한 관광지로 개발되는 꿈을 꾸어 본다. 태어날 때의 자연 그대로처럼 크게 외치면서 감정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하는 한낮의 월하성 달빛에 마음의 충동질을 만난다. 2020년 4월 24일 토요일 아침부터 바람이 분다. 거친 바람이다. 아무리 봄이라고는 하지만 왜 이리도 바람이 부는 것일까? 괜히 걱정이 된다. 들녘은 아직 텅 비어있으니 가을의 들녘이라면 더욱 크게 걱정스러웠으리라 생각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바로 그때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바람이 세게 불어 혹시라도 산애재(蒜艾齋)의 나무에 피해가 입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고마
032. 금강하굿둑 관광단지를 찾아서 - 충남 서천군 마서면 장산로 855번길 56-2 어느덧 발걸음은 두 눈앞에 하늘 높이 치솟은 전망대 앞에 이른다. 4층으로 이루어진 전망대에 한 층 한 층 오를 때마다 점점 넓어지는 시야 속에서 경탄을 쏟아놓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금강하굿둑의 완공으로 새롭게 탄생한 하굿둑관광단지가 그대로 펼쳐져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좀 더 눈을 돌리면 금강하굿둑의 우람한 규모와 으리으리한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흘러나온다. 동쪽으로는 저 멀리 봄 햇살 반짝이는 금강의 물너울과 함께 어우러져 끝없이 펼쳐져 있는 서천의 들녘, 서쪽으로는 우리나라 근대산업화의 상징으로 표상된 장항 제련소의 굴뚝이 아직까지도 그대로 서서 선뜻 눈앞으로 다가온다. 우리나라에서 하굿둑이 최초로 건설된 것은 1981년에 건설된 영산강 하굿둑이며, 두 번째로는 1987년 낙동강 하굿둑, 그리고 세 번째로는 바로 1990년 10월에 준공된 금강하굿둑이다. 이 금강하굿둑은 총 1천10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 연인원 40만 명과 12만 대의 중장비가 동원돼 지난 1983년 11월 첫 삽을 뜬 이래 8년의 공정을 거쳐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총 길이 1,841m
031. 서천 읍성(舒川邑城)을 찾다 - 충남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 일원 지금 눈앞에 전개되는 사실조차 스치듯 지나버리면 캐고 따지고 밝히기가 쉽지 않은데, 하물며 오래된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쉽사리 규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미 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두워질 대로 어두워진 역사적 진실을 알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역사의 진실은 오늘날에까지 보이지 않는 우리의 삶 구석구석 어디쯤에 은은하게 배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어떠한 이유로든 부정할 수 없다. 역사는 과거의 사람들이 살아온 삶을 오늘의 시선으로 바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에게 미래를 제시받도록 해준다. 그러므로 역사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다. 다만 때와 장소를 초월하여 존재하며, 그렇게 존재하여 문화의 근원을 이루어준다. 그러므로 문화는 역사가 맺어준 견실한 열매가 되는 것이요, 역사는 문화의 견고한 뿌리가 된다. 봄맞이가 한창인 요즈음에는 온 누리가 모두 꽃이다. 고개를 숙여 지상의 봄을 눈여겨보면 온통 별꽃 천지다. 아침이 지난밤의 어둠을 내몰 듯 별꽃은 지상에 남아 있는 추위부터 몰아내는 듯하다. 하루가 다르게 따뜻한 기운이 가득해지는구나 싶다 보면
030. 천방산千房山에서 서해를 부르다 - 서천군 시초면, 문산면, 판교면에 걸쳐 있는 산 아, 천방산! 서천에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니 서천을 고향으로 둔 사람이 서천의 중심지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천방산을 어찌 떠올리지 않을 수 있으랴. 그만큼 서천사람은 천방산을 꿈꾸고 아끼고 사랑하고 좋아한다. 멀리에서 바라보면 인자하기 이를 데 없는 아버지의 모습, 품에 안기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가슴 같은 천방산은 언제 어디서나 서천사람들과 마음을 함께 한다. 비록 백제의 슬픈 패망의 전설을 안고 있다 하더라도 그 슬픔을 내면 깊숙이 감추어둔 삶으로 에너지화한다. 그래서 겉으로는 거칠지 않는 푸근함에 누구든지 삶의 슬픔까지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지혜로움을 터득한다. 천방산千房山은 판교면, 문산면, 시초면에 걸쳐 산자락이 넓게 퍼진 큰 산으로 해발 324m 산이다. 그다지 높지 않고 산세도 험하지 않아 가벼운 산행을 즐기기에 좋다. 천방산 바로 서쪽으로는 봉림산이 위치해 있으며, 그와 잇대어 천방산은 동서남 방향으로 7개의 봉우리를 병풍같이 둘러치고 서북과 동북쪽 방향으로 시원한 풍광을 펼쳐놓는다. 천방산은 산애재蒜艾齋 문밖으로 나서면 가슴 가득 안겨온다. 초등학교
029. 장항 옛 도선장을 찾아서 -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산로 여객선은 언제나 추억을 만들어 주곤 한다. 여객선 통학생은 물론이려니와 선남선녀만이 누릴 수 있는 사랑의 결실을 여객선이 또한 엮어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장항에서 배를 타고 군산으로 데이트를 하러 간 선남선녀가, 군산으로 건너가서 월명산 공원을 오르내리다가 은파호수공원(유원지)에도 산책하고, 극장에서 좋은 영화도 보고, 좋은 찻집에서 차 한 잔도 마시는 등 슬슬 시간을 끌면서 이곳저곳을 다닌다. 그러다가 그만 막배를 놓쳐버린 안타까운 행운(?)을 만난다. 끝내 막배를 놓쳐버린 그날 이후 사랑에 더욱 무르익어버린 남녀는 결국 한 가정을 이루기도 했단다. 그렇다면, 사랑을 위해서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막배를 놓쳐라―, “항구에서는 오늘도 푸른 파도가 이랑이랑 넘실거리고 있고, 푸른 파도 위에서는 흰 갈매기가 너훌너훌 날개를 치고 있고, 또 그 위에는 남빛 하늘이 훤칠하니 개어 있어 하늘과 바다 사이의 청청한 공간을 어선들은 아득한 수평선을 향하여 바다로 바다로 기운차게 달려 나가고 있다.” ― 정비석의 「항구풍경港口風景」의 한 구절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새롭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28. 득음(得音)길, 대바람 솔바람 소리 - 충남 서천군 종천면 도만리 이동백의 소리길을 따라 시나대 숲은 한적하리만치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이따금 작은 바람이 스쳐 지날 때마다 추임새가 질펀하게 내려깔릴 듯하다. 지난 가을 내내 떨어진 낙엽이 푹신 쌓여있어 발걸음이 한결 부드럽다. 너름새가 분명하다. 강하고 맑은 계면조의 소리가 확실하다. 소리의 고저가 분명하고 명확히 구분하여 들려준다. 평평하게 시작하여 중간을 높이다가 끝을 다소 낮추어 끊어버린다. 판소리 중고제의 기교가 시나대숲에 살아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소리가 시나대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인가 했더니 그것이 아니요, 저만큼의 소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인가가 했더니 그 소리는 더욱 아니다. 소나무와 왕대숲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시나대숲에서 갈무리되다가 절로 우려내지듯 들린다. 2020년 2월 20일 목요일 오후. 아직 벽면에 매달린 달력 위에는 겨울이 머물고 있지만 지상 위에는 완연한 봄맛이다. 입춘을 지나 이미 우수를 맞기는 맞았지만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경칩을 보름가량이나 남긴 터라 포근한 봄 날씨를 보인다는 것은 그다지 탐탁치만은 않다. 하기사 ‘우수(雨水)’라는 말이 ‘눈이 녹아서 비나 물
027. 한산(韓山) 건지산성(乾芝山城)에 오르다 -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 곧바로 몇 계단에 이어서 성벽을 타고 앞으로 천천히 오른다. 성벽은 지금 한창 지표조사 중이다. 석성(石城)의 모습을 엿보여준다. 성벽 주위에는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한편 꺾이고 토막 난 채로 썩어 뒹굴고 있다. 노송 몇몇은 불어오는 바람결에도 의연한 부답(不答)으로 묵상 중일뿐 아무런 몸짓을 드러내지 않는다. 흘러간 세월 동안 보고 듣고 느껴온 바를 아무리 몸을 흔들어 보여준다 하더라도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리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생각은 곧 무념무상(無念無想) 함 일 뿐이다. 역사는 그렇게 유유한 흐름 속에서 성벽으로 견고하게 쌓여있는 거대한 돌처럼, 돌 틈에 파고들어 있는 듯 없는 듯 바짝 스며든 흙 한 줌처럼 무언(無言)으로 기록된 자취만으로 남겨진다. 2020년 2월 23일 일요일, 한산 건지산성(乾芝山)을 찾기로 한다. 이미 품속에 안겨있는 듯한 봄기운은 화창하기 이를 데 없어 온몸은 철철 온기로 넘친다. 천천히 봄을 만끽하면서 시초로를 벗어나 시초남로에 이어 화산로를 거쳐 삼일로에 든다. 부엉바위를 곁에 끼고 부드러운 바람에 출렁이는 봉
026. 풍정리 유적공원(遺蹟公園)을 찾아서 - 충남 서천군 시초면 풍정리 106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확실하게, 그리고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이다. 다만 언제 어디서 죽을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태어나서 죽는다는 불확실한 시간 동안에만 사람은 생명을 가진다. 그 불확실한 시간 속에서 사람은 살아가는 길을 걸으면서 생명조차도 잃어버린 채 가장 강하다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숨을 고른다. 이것이 모든 비열한 것의 가장 큰 근본 원인이 되기도 함에도 사람은 생명을 부지하려고 하고, 또 한 생명체로서의 존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 노력이 얼마나 치열한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일생을 돌아보면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다’만 남는다. 사람만이 아닌 모든 생명체들이 가지고 있는 운명이다. 2020년 2월 13일 일요일. 지방도 611호선을 따라 달리다가 문산면 소재지에서 핸들을 꺾어 시초동로를 따라 동부저수지(봉선지) 쪽으로 몇 걸음 건너니 서천-공주 간 고속도로가 보인다. IC로 닦여진 길이 고속도로와 곧장 연결되어 있으나 위협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바로 생과 사의 갈림길을 가로막고 있는 듯하다. IC개통이 거부되어 있다.